스마트 농업

농산물 유통과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기술의 결합 가능성 – 블록체인 그다음 단계

hrhw 2025. 7. 25. 15:28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 분야에서도 유통의 자동화와 투명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농산물 유통은 수많은 중개자와 계약서, 출하 지시서, 검수서류 등 복잡한 문서 기반 시스템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여전히 비효율성과 불신이 혼재된 구조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기술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이다.

  스마트 계약은 단순히 거래 기록을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수준을 넘어, 사전에 정의된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을 자동으로 실행하고 대금을 이체하며 권리를 이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율 실행형 코드이다. 이는 곧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며, 특히 농산물의 수확→계약→검수→대금 지급이라는 구조에 매우 적합하다.

 

  이 글은 스마트 계약 기술이 농산물 유통에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으며, 현재 기술적 제약과 실현 가능성은 어떤지에 대해 다룬다.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와 디지털 개입의 필요성

  현재 농산물 유통 구조는 농가, 산지유통센터, 공판장, 중도매인, 소매업자 등 다양한 주체가 관여하는 복합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약은 대부분 사람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고, 일정 시점에 맞춰 물류를 이동시키며, 검수에 따라 대금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는 계약 불이행, 출하 지연, 검수 분쟁, 대금 지급 지연 등의 리스크가 상존하며, 특히 소규모 농가는 유통 지위가 약해 공정한 계약 이행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계약서 관리와 유통 흐름 기록이 일부 시범 적용되어 왔으나, 블록체인은 단순 저장 기술일 뿐 자동 실행 기능은 부족하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스마트 계약은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 기록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조건 충족 → 자동 실행 → 검증 후 자동 정산이라는 완전 자동화된 계약 흐름을 구현할 수 있어 농산물 유통의 새로운 기술 기반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의 기본 원리와 농업 적용 가능성

  스마트 계약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 코딩된 ‘조건부 계약서’다. 예를 들어 “온도 4도 이하에서 저장된 토마토 1,000박스가 7일 이내 도착하면 대금 500만 원을 송금한다”는 계약을 스마트 계약 형태로 만들 경우, IoT 센서와 물류 추적 장치가 이 조건을 자동으로 검증하고,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블록체인에서 자동으로 대금이 지급되는 구조로 작동한다. 농산물 유통에 있어 이 구조는 두 가지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

  첫째는 신뢰 기반 자동화, 즉 계약 당사자가 서로를 몰라도 기술적으로 조건 충족 여부가 명확히 판단되므로 별도의 검증 없이도 거래가 실행된다.

  둘째는 시간 단축과 중개 절감, 기존에는 계약 이행 후 대금 지급까지 며칠씩 걸렸던 과정이 수 시간 내로 단축되며, 인력 개입이 줄어 비용도 절감된다.

  스마트 계약은 이러한 기능을 바탕으로 공판장 외 시장, 직거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적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기존 유통 계약 방식 vs 스마트 계약 방식 비교

항목 기존 유통 계약 스마트 계약 방식
계약 체결 문서 기반, 서명 필요 블록체인 기반 자동 계약 코드 생성
조건 검증 사람 또는 서류 확인 IoT 센서, 위치 정보 기반 자동 검증
대금 지급 수일 내 송금 또는 어음 처리 조건 충족 시 자동 지급 (지갑 또는 계좌)
분쟁 발생 가능성 검수 기준·온도 조건 등 해석 차이 존재 계약 코드로 기준 고정, 해석 불필요
계약 당사자 간 신뢰 필요 수준 높음 중립 시스템 기준 작동으로 신뢰 필요도 낮음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볼 때, 스마트 계약은 농산물 유통에서 비대면 신뢰 자동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기존 계약과 달리 데이터 기반으로 조건을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줄여준다.

실제 적용 사례 및 도입 움직임

  2024년 기준, 네덜란드는 딸기와 토마토 등 고부가가치 농산물 수출 계약에 스마트 계약을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수출국의 구매자가 ‘품질 조건 + 냉장 상태 유지 + 도착일 기준’에 따라 대금을 자동 송금하는 구조로 운영되며, 전 유통 과정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기록하고, 스마트 계약으로 정산을 자동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 스마트팜 연합이 유통협동조합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 출하 이력 관리를 시범 도입하였고, 이후 스마트 계약 기반 자동 정산 시스템으로 확장 중이다. 또한 경기도는 온라인 직거래 마켓에 스마트 계약 알고리즘을 연동해 산지 직송이 완료될 경우 생산자에게 자동 수익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설계하고 있으며, 현재는 시험 단계에 있다.

도입의 걸림돌과 기술적·제도적 과제

  스마트 계약이 농산물 유통에 본격 적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기술 인프라 문제이다. IoT 센서, 위치 추적 시스템, 데이터 보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스마트 계약의 조건이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중소농이나 농촌 지역에서는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하거나 장비 유지관리 인력이 부족하여 시스템 운영에 어려움이 따른다.

  둘째는 법적 효력 문제이다. 스마트 계약은 자동으로 실행되지만, 현행 한국의 민법 체계에서는 전자문서화된 계약의 법적 해석이 불분명하며, 분쟁 발생 시 계약 코드의 효력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다.

  셋째는 신뢰 기반 구축 문제다. 스마트 계약이 오히려 신뢰를 강화하려면, 기술의 투명성뿐 아니라 공공 또는 중립 기관의 계약 검증 시스템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농가, 유통사, 소비자 모두가 계약 이행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결론: 자동화된 신뢰, 농업 유통의 미래로 가는 길

  스마트 계약은 단지 블록체인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농산물 유통의 신뢰와 속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기술 대안이다. 사람이 감시하지 않아도 조건만 만족되면 자동으로 계약이 이행되는 구조는 농가의 대금 수령 안정성과 유통사의 비용 절감, 소비자의 투명한 이력 확보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물론 아직 기술과 법제도의 정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선제적인 실증과 제도 기반 마련이다.

  스마트 계약이 농산물 유통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불확실한 계약과 복잡한 문서를 줄이고 신뢰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통해 농업 유통이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스마트 농업 유통의 미래다.